디지털 치료제, 기존 시험 방식으로 충분할까?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치료제라고 하면 더 이상 ‘약’이나 ‘주사’만을 떠올리지 않는다. ‘디지털 치료제’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서,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이 기존과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스마트폰 앱이나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람의 행동을 바꾸거나 인지 능력을 개선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내는 기술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수면 장애를 치료하는 수면 코칭 앱이나, 우울증 환자를 위한 인지 행동 치료 콘텐츠가 있다. 그런데 이 디지털 치료제가 전통적인 임상시험 방식과 충돌하면서, 의료 분야에서는 큰 혼란과 변화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임상시험인 RCT(무작위 대조 시험, 즉 실험군과 대조군을 무작위로 나누어 검증하는 방식)는 그동안 가장 신뢰받는 검증 방법이었지만, 디지털 치료제의 특성은 이 방식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치료제가 왜 RCT 방식과 충돌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독자들이 이 글을 통해 디지털 치료제 시대의 임상시험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얻길 바란다.
RCT: 과학적 검증의 핵심지침, 그러나 모두에게 맞는 방식은 아니다
RCT는 수십 년 동안 약물이나 의료기기의 효과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 방식은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실제 치료를 제공하고 다른 그룹에는 가짜 치료(위약 또는 플라시보)를 제공한다. 이렇게 비교함으로써 치료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RCT는 전제가 명확하다. 치료가 일정하게 주어져야 하며, 모든 참가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 전제는 약물이나 수술처럼 고정된 치료 방식에는 잘 맞지만, 디지털 치료제처럼 사용자 맞춤형으로 바뀌는 치료에는 적용이 어렵다. 예를 들어, 한 디지털 치료제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우울증 환자에게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가정하면, 이 콘텐츠는 매일 사용자 반응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즉, 실험군 안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개입을 전제로 한 RCT와는 본질적으로 어긋나는 구조다. 따라서 디지털 치료제에 RCT를 그대로 적용하면, 효과를 정확히 분석하지 못할 위험이 높아진다. 연구자는 이런 복잡한 구조를 고려해 새로운 검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 치료제의 변화무쌍한 구조가 임상시험을 어렵게 만든다
디지털 치료제는 사용자의 상태에 따라 실시간으로 치료 내용을 바꾸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치료 방식이다. 이 말은 곧 치료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진화하고 변화하는’ 구조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수면장애 치료용 앱은 사용자의 수면 시간, 기상 시각, 스트레스 수준 등을 분석하여 매일 다른 조언이나 행동 지침을 제공한다. 이런 치료 방식은 환자에게 매우 유익할 수 있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치료가 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임상시험에서 어떤 치료가 효과를 냈는지 분석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참가자의 스마트폰 사용 습관, 기술에 대한 이해도, 앱 실행 빈도 등도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다양한 변수는 전통적인 RCT 설계에서는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치료 효과에 대한 신뢰성 있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결국 디지털 치료제는 그 자체의 장점으로 인해 기존 임상시험 방식과 충돌하게 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상시험 설계 자체의 유연성이 필요해진다.
디지털 치료제에 적합한 대안적 임상시험 방법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디지털 치료제에 적합한 새로운 임상시험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적응형 임상시험(Adaptive Trial)’이다. 이 방식은 시험을 진행하면서 중간에 결과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시험 설계를 유연하게 바꾸는 구조다. 예를 들어, 중간 분석에서 특정 개입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그 방식으로 실험군을 더 많이 구성하거나, 효과가 없는 방식을 제외하는 식이다.
이외에 다른 하나는‘현실 세계 근거 기반 연구(RWE: Real World Evidence)’도 있다. 이 방식은 실제로 환자가 일상에서 앱을 사용하는 데이터를 수집하여 치료 효과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치료제의 현실 적용력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다. 미국 FDA와 유럽 EMA는 이미 이런 방식의 시험을 일부 디지털 치료제에 대해 허용하고 있으며, 한국 식약처도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앞으로는 고정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는 시대에서, 변화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임상시험의 패러다임이 이동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의 상용화를 위한 규제기관과의 상호 협력
디지털 치료제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우수하다고 해도, 이를 실제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려면 반드시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규제기관이 여전히 RCT 결과를 근거로 치료 효과를 평가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RCT가 맞지 않는데도, 승인받기 위해 억지로 RCT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이는 기업에게도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초래하고, 결국 환자에게도 불리한 결과를 만든다. 특히 AI 기반 치료제는 알고리즘이 업데이트되면서 치료 방식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승인 당시와 실제 출시 버전이 달라질 수 있다. 규제기관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아직 명확히 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기업과 규제기관 사이에서는 ‘업데이트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모델 버전은 어떻게 고정할 것인가’ 등을 놓고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는 기존의 평가 기준을 디지털 기술에 맞게 조정하거나, 아예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규제기관도 변화에 적응해야 할 시점이다.
디지털 치료제가 만든 새로운 임상시험의 미래
디지털 치료제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의료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전통적인 임상시험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고정된 조건에서 결과를 얻으려 했다면, 디지털 치료제는 개인화되고 유연한 환경 속에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데이터를 통해 치료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시험 방식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검증의 철학 자체를 재정의한다. 앞으로의 임상시험은 사용자의 행동 패턴, 기술 사용 경험, 일상 속 데이터를 고려한 구조로 전환되어야 하며, 알고리즘의 신뢰성, 예측 가능성, 그리고 설명 가능성까지도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 의료는 이제 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동적인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으며, 그에 걸맞은 새로운 평가 기준과 임상시험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다. 기술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이제 과학적 검증과 제도적 뒷받침이 변화에 발맞추어 따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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