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임상시험을? In Silico 기술의 매력
In Silico 임상시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상의 인간 모델에 약물을 투여하고 그 반응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임상시험이 사람에게 실제로 약물을 투여해 반응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면, In Silico는 생리학적 수학모델을 바탕으로 약물이 체내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를 가상으로 예측한다. 특히 PBPK 모델(Physiologically Based Pharmacokinetic Model)은 인체의 장기, 혈류, 효소, 대사작용 등을 정교하게 반영하여 약물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는 데 쓰인다. 이런 기술을 활용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임상시험의 일부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위험군 환자나 소아, 희귀질환 환자 등 실제 실험이 어려운 집단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이 기술이 약물 개발의 필수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으며, FDA나 EMA와 같은 주요 규제기관은 In Silico 결과를 신약 허가심사의 보조자료로 인정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점점 이 기술이 실제 임상 데이터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초기 안전성 검토와 독성 분석까지 담당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왜 In Silico가 어렵다는 걸까?
이처럼 세계적으로는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 In Silico 기술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제한적으로만 도입되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규제의 문제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아직 In Silico 결과를 공식 임상시험의 일부로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의 데이터 제출은 보조적인 참고자료로만 간주되며, 허가나 심사의 핵심 근거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둘째는 데이터 기반의 부족이다. In Silico 모델은 고품질의 생리학적, 약동학적 데이터에 기반해 설계되어야 하지만, 국내에는 체계적이고 정량화된 환자 생체정보가 매우 부족하다. 병원마다 진료 시스템과 데이터 기록 방식이 다르고, 표준화되지 않은 데이터가 많아 실제 모델링에 활용하기가 어렵다. 셋째는 전문 인력과 생태계의 부재다. In Silico 모델을 개발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 특히 수학모델링, 약물역학, 생물정보학에 능통한 연구진이 적으며, 관련 학문 간 융합도 활발하지 않다. 산업계에서도 이를 주도하는 대형 제약사나 벤처의 수가 적고, 투자 유치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글로벌은 In Silico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In Silico 임상시험을 활용한 실제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Vertex사는 희귀 유전질환인 낭포성 섬유증 치료제 Kalydeco를 개발할 때, 희귀 유전자 변이 환자 수가 적어 실제 임상이 어려웠던 문제를 In Silico 모델로 극복했다. 환자의 유전자형에 따른 단백질 반응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고, 그 데이터를 FDA에 제출해 신약 승인을 받았다. 유럽의 EMA는 항암제 개발에서 PBPK 모델을 통해 독성을 예측하고, 고위험군에서의 임상 설계를 보완하는 데 활용한 바 있다. 일본은 후생노동성과 PMDA가 공동으로 In Silico 기반 신약개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이를 제도권으로 편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NIH와 DARPA가 Digital Twin 기반의 정밀의료 모델을 지원하면서, In Silico 기반 약물 시뮬레이션 기술이 정밀의료와 융합되는 흐름도 이미 시작되었다. 즉, In Silico는 단순한 보조 기술이 아니라 이미 제약 전략, 임상 설계, 안전성 평가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보건복지부는 In Silico 임상시험을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분류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R&D 예산을 일부 배정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 KAIST 등에서는 PBPK 모델과 AI 기반 약물 반응 예측 연구를 수행 중이며, 일부 바이오 벤처 기업들은 In Silico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자체 개발하여 글로벌 제약사와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규제, 데이터, 인력, 투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규제기관이 In Silico 결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국제 기준에 맞춘 평가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며, 이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와 신뢰성 확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병원과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는 표준화가 필요하고, 민감한 의료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갖춰진다면, 한국도 충분히 In Silico 기술을 전면 도입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에서의 In Silico는 가능성, 문제는 ‘연결’이다
결국 한국에서 In Silico 임상시험이 어려운 것은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도 일부 존재하고, 데이터도 병원과 공공기관에 분산돼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를 연결해주는 체계와 생태계가 미비하다는 점이 핵심이다. 규제기관은 국제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심사기준을 제시해야 하고, 연구기관은 표준화된 데이터와 정밀 모델을 구축해야 하며, 제약사는 이를 활용한 임상 설계와 약물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과도기이며, 해외에서는 이미 In Silico가 현실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한국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 특히 희귀질환, 고령사회, 신약개발비용 증가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도구로 In Silico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In Silico 임상시험에 대한 현실적인 진입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결국 의료 기술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며, In Silico는 그 연결의 핵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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