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료제 승인, 임상 데이터의 수준 어디까지
디지털 치료제, 약도 아니고 기기도 아닌 ‘치료 소프트웨어’
디지털 치료제(DTx, Digital Therapeutics)는 질병을 치료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개발된 의학적 개입 목적의 소프트웨어다. 기존에는 질병 치료라고 하면 주로 약물이나 의료기기를 떠올렸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나 알고리즘 기반으로 행동을 바꾸거나 인지를 개선하는 소프트웨어가 ‘치료제’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예를 들어 수면장애, 우울증, ADHD 같은 질환에 대해 모바일 앱이나 웹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 맞춤형 치료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디지털 치료제가 실제 의료현장에서 사용되기 위해서는 식약처나 FDA 같은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임상 데이터다. 문제는, 기존의 의약품과 달리 소프트웨어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개입 내용이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수준의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아직 자리잡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디지털 치료제 승인을 받기 위해 최소한 어떤 수준의 임상 데이터를 갖추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기존 의료기기나 의약품과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특히, 디지털 헬스 기술에 관심 있는 개발자, 스타트업, 의료 전문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현행 제도와 실제 사례 중심으로 살펴보자.
규제기관은 어떤 기준으로 디지털 치료제를 평가할까?
2025년 현재, 미국 FDA와 유럽 EMA, 그리고 한국 식약처는 모두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별도의 허가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각 기관은 공통적으로 디지털 치료제를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Software as a Medical Device)’로 분류하며, 의료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자료를 요구한다.
그러나 디지털 치료제는 고정된 하드웨어나 약물과 달리, 사용자 반응에 따라 실시간으로 조정되는 동적 시스템이기 때문에, 규제기관은 RCT(무작위 대조시험, Randomized Controlled Trial)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FDA나 식약처는 디지털 치료제에 대해 기존 의료기기처럼 기능적 유효성(functional effectiveness)과 임상적 유효성(clinical effectiveness)을 구분해 요구한다.
예를 들어, 우울증 치료용 앱이라면 앱이 정상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지(기능적 유효성)와, 실제 사용자의 우울증 지수가 통계적으로 개선되었는지(임상적 유효성)를 모두 검토해야 한다. 또한, 치료제의 효과가 AI 알고리즘에 의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구조라면, 모델 업데이트 이력(version control)과, 버전별 임상 성능 차이에 대한 분석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결국 규제기관은 “이 소프트웨어가 실제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효과가 안전하고 재현 가능한지”를 입증할 수 있는 정량적 데이터를 최소 조건으로 보고 있다.
최소한의 임상 데이터 수준, 어디까지 필요한가?
그렇다면 디지털 치료제가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임상 데이터’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다음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중심 임상시험 데이터(Pivotal Data)
- 실제 환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치료제를 사용한 후, 질병 지표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 요구됨
- 보통 50명 이상의 피험자가 포함, 단일군 시험(Single Arm Trial) 또는 비교군이 포함된 전향적 시험이 권장
- 이 데이터는 치료 효과의 과학적 근거로 작용하며, 규제기관에서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자료
2. 객관적 효과 측정 지표(Objective Endpoints)
- 반드시 수치로 측정 가능한 결과 지표를 포함
- 예를 들어:
- 수면 시간 변화,
- 심박수의 개선,
- 우울증/불안 자가보고 설문 점수(PHQ-9, GAD-7 등)
- 이러한 지표는 객관성, 재현성, 측정 가능성이 입증 & 의학적 검증 도구로 인정받는 방식
3. 사용자 순응도(Adherence) 및 지속성(Retention) 데이터 포함
- 디지털 치료제는 일정 기간 꾸준히 사용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치료 구조입니다.
- 사용자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앱을 이용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
- 예를 들어:
- 1일 평균 사용 시간,
- 7일 연속 사용률,
- 중도 이탈률,
- 알림 반응률 등
- 현실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여부 평가 (순응도와 지속성이 낮을 경우, 치료 효과가 있더라도 승인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음)
이러한 데이터는 단일 시험만으로 확보되기 어려워서, 통상적으로는 파일럿 시험 + 주요 임상시험 조합이 권장된다. 일부 국가는 RWE(Real-World Evidence, 실제 환경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보조자료로 허용하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디지털 치료제 승인에는 적절한 규모의 피험자 수, 정량적 효과 입증, 사용자의 실사용 데이터를 포함한 지속성 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치료제만의 특수성, 평가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디지털 치료제는 전통적인 약물처럼 일정 용량을 투여하는 구조가 아니라, 사용자의 반응에 따라 개입 내용이 달라지고,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AI 알고리즘이 업데이트되는 매우 동적인 구조를 가진다. 따라서 임상시험에서도 이런 동적 특성을 반영한 설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적응형 임상시험(Adaptive Trial)’이나 ‘단일 피험자 반복 측정 설계(N-of-1 Trial)’는 디지털 치료제에 더 적합한 구조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치료 내용을 고정한 버전으로 먼저 승인받고, 향후 알고리즘이 개선된 버전을 단계적으로 업데이트하며 별도 검증을 받는 점진적 업데이트 모델도 일부 규제기관에서 허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디지털 치료제는 UI/UX 설계, 알림 빈도, 사용자 인터페이스 구성도 치료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평가 항목이 훨씬 다양하다. 이 때문에 FDA와 식약처는 소프트웨어 변경사항이 치료 성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성능 변경 심사’를 별도로 요구할 수 있다.
결국 디지털 치료제의 임상 데이터는 단순한 치료 효과만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 기능 안정성, 알고리즘 적절성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검증자료가 필요하며 이것이 곧 승인의 최소 요건이 된다.
디지털 치료제의 향후 방향성: 허가는 증거로 말한다
디지털 치료제는 의료기기와 약물의 중간 지점에 있는 새로운 형태의 치료 수단이다. 이 때문에 규제기관은 그 기준을 따로 마련해야 하고, 개발사는 그 기준에 맞춘 임상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2025년 현재, 디지털 치료제의 승인에 필요한 임상 데이터는 단순한 사용자 만족도나 앱 기능 안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질병에 효과가 있었는지, 그 효과가 반복 가능하고 안전한지, 그리고 사용자가 실제 환경에서 꾸준히 사용했는지에 대한 정량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핵심이다.
앞으로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더 커질 것이며, 그만큼 규제 수준도 더 명확하고 엄격해질 것이다. 이를 대비해 개발자와 기업은 기술만큼 중요한 것이 임상 데이터라는 점을 고려하여 의료계와의 협업을 통해 과학적이고 신뢰성 있는 근거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